<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권상미 옮김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권상미 옮김

선택 동기
책장의 책 파먹기(있는 책 읽어내기) 일환
독서 및 기록 방법
책장에 몇 해째 자리하고 있는 책을 꺼내 읽었고 노션에 좋은 문장을 발췌하여 단상과 함께 기록
한 줄 감상
누군가에겐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일상,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았던 이유 (책을 읽고 느낀 점)
퇴사하고 이제 꼭 1년이 되어간다. 전업주부의 삶이 익숙하고 즐겁고 만족스럽다. 그러면서도 한편, 또다시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바쁘게만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깝고 무서워서 고민하고 고민해서 퇴사를 결정했다. 전업주부로 1년을 지내보니, 일상에서 더 행복을 찾게 되고 만족감도 커지지만, 아직 젊은데 이렇게 여유롭고 작은 행복들만 추구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또 어쩔 수 없이 든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은 퇴사 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워킹맘 시절보다 훨씬 고민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 <올리브 키터리지>는 나의 이 질문들을 함께 고민해 준다. 할머니가 된 올리브 키터리지 부인의 삶을 함께 되돌아본다. 누구나 그렇듯, 실수도 사랑도 행복도 눈물 또한 많았던 그 삶에 대하여.
올리브 키터리지 부인과 그녀의 가족들, 그녀가 평생을 살았던 작은 마을의 여러 가족들의 이야기. 우리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가족사들. 멀리서 보면 평범하지만 그 당사자들에게는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이었을까?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는 우리의 이야기들. 노년을 보내는 그들이 하는 인생의 질문들을 보며 같이 고민해 보고 또 지금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이가 들어서 어떤 생각을 할지 또 어떤 후회를 할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결국 그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가족과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재미없고 뻔한 인생의 주제 같지만, 올리브 키터리지도, 그녀의 주위사람들도 그리고 우리도 항상 이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또 시간이 흐르면 나도 또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많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나라도 덜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솔직히 내가 제일 함부로 대하고 잘못하는 남편, 부모님, 딸 생각 (가족 전부인데?)이 아주 많이 났다. 아직 마흔도 안되었는데 후회의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올리브 키터리지 부인 이야기 듣고 나는 조금이라도 내 그릇을 키울 수 있었을까?

발췌와 단상 (스포일러 주의!)
78쪽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
81쪽
하지만 집과 담쟁이가 한 껏 엉킨 나무들, 솔가리 더미 가운데 동그마니 놓인 여성용 슬리퍼 한 짝을 봤을 때의 놀라움과, 계곡 야생 나리꽃의 벌어진 잎사귀들이 그리웠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 올리브는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살아왔는가? 보잘것없는 나도 그렇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좋은 영향과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현실은 불만만 가득한 어리석은 어른이.
83쪽
가지 마세요, 키터리지 선생님. 가지 마세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86쪽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 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 는 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 하는지.
-찰나의 우연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며 순간을 만드는지.
97쪽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할걸. 그러나 앤지에게 시간은 하늘만큼이나 크고 둥글였고, 시간을 이 해하려는 시도는 바로 음악과 신을, 왜 바다가 깊은지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앤지는 오래전부터 그러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
-나는 앤지 같은 사람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얼마나 쉽게 판단하며 살아왔나. 나랑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못하더라도 밀어내지는 말자.
108쪽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뭐든 늦게 깨달을까 봐 무서워서 이 것 저 것 읽고 항상 뭔가를 알려고 안달복달하는데…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늦게 깨닫는 것도 많겠지.
124쪽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 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요즘엔 ’ 작은 기쁨‘에 치중하느라 욕망도 야망도 없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가끔 걱정될 때도 있다. 그래도 ’ 큰 기쁨‘ , ’ 작은 기쁨‘이 뭔지 항상 생각하고 그것이 행복이고 고마운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 놓치지 알고 깊게 느끼고 싶다.
127쪽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 그리고 외동아들인 게 그이한테는 정말 죽음이었지."
해초가 웅얼거리고 수간의 노가 다시 물살을 갈랐다. "기대치라는 게 있잖아."
올리브가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우리 외동딸을 어떻게 잘 키워야 할까? 그저 건강하고 작은 일에도 잘 웃는 아이가 되길 바라면 되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욕심대로 아이에게 바랄까 봐 걱정이 된다. 이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둘 다 즐겁고 재밌게 잘 보내보자. 이 시간을 소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162쪽
하먼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지 않았지만 성탄절이면 팝콘봉을 만들었다.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뭔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측량할 수 없는 인생의 어떤 상실이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들어 올려지고, 바위 밑에서 - 데이지의 푸른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전의 위안과 다정함을 발견한 듯이.
-나는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항상 다정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 못났다. 하나라도 내가 조금 변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다정하게 우리의 말을 서로 들어주는 것인데… 난 왜 그것을 제일 못할까? 요즘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지 않은데 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할까? 내 마음의 그릇은 어떻게 조금이라도 커지게 만들 수 있을까?
187쪽
하먼이 지금 알지 못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 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치유할 수 없는 어긋난 뼈를 만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은 사람이 되길.
211쪽
올리브는 그 광기 어린 좌절이 어딘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퍼가 어릴 때 그녀는 아이에게 종용하곤 했다. 대답해! 크리스토퍼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듯 언제나 조용한 아이였다.
-요즘 아이가 조금 컸다고 나도 모르게 어른에게 말하듯이 매몰차게 말할 때가 많은 것을 느낀다. 나는 왜 이렇게 다정하지 못할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렇게 책을 한 두권 읽어나가면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23쪽
하지만 정신은, 혹은 마음은, 돌 중 어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요즘 좀 느려서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그녀는 점점 더 빨리 도는 공 위에 올라가려는 뚱뚱한 들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공을 네 발로 긁을 뿐 그 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250쪽
제인은 조용히 깊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불현듯 아이스크림 가게의 어린 소녀들이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디를 건네는 여종업원의 지루한 눈빛 뒤에 엄청난 열망과, 엄청난 욕망과 엄청난 낙심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런 혼란이, 그리고 (그들은 더욱 지치게 만드는) 분노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오, 그들은 무엇이든 끝나기도 전에 책망하고, 책망하고, 또 책망하곤 또다시 지쳐버릴 것이다.
-나는 이제 내년에 마흔인데 왜 이렇게 생각이 늙어버린 것 같지. 어떤 측면에서는 아직도 쉽게 열망하고 실망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이게 다 뭔가 싶고, 아무것도 시작하기 싫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도 아니면서 조금 알고 있다는 듯이.
292쪽
그 가을 공기는 아름다웠고, 땀에 젖은 건장하고 젊은 몸뚱이 들은 다리에 진흙을 묻히고 공을 이마로 받으려고 온몸을 내던지돈 했다. 골이 들어갔을 때의 환호,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 골키퍼. 집으로 걸어가면서 헨리가 올리브의 손을 잡면 날들이 있었다. 이런 날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 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항상 지금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해준다. 나도 지금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더 행복함을 느끼면서 잘 지내고 싶은데, 순간순간 어리석은 불평불만의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고마워하면서 더더 행복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까?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그릇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행복한 순간들을 부지런히 기록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욕심만큼 그런 시간들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 미라클 모닝이 필요한데… 요즘 부족한 것이 없는지 아침에 절대 안일 어나 진다. 안이한 녀석.
326쪽
그런 여행 바구니가 없는 이가 누구랴.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
352쪽
나는 키터리지 선생님이 어느 날 했던 그 말이 늘 기억에 남아있어.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마라. 배고픔을 두려워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얼간이가 될 뿐이다."
457쪽
"아내가 12월에 죽었어요." 그가 말했다.
올리브는 강만 바라보았다. "그림 댁도 지옥이겠구려 " 그녀가 말했다.
"지옥이죠."
461쪽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 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나는 올리브의 나이가 되면 어떤 후회를 하며 살아갈까? 너무 많은 후회를 할까 봐 두렵다. 이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노년의 시간이 무섭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읽은 <즐거운 어른>(이옥선 작가)을 보니 또 그 시간을 씩씩하고 담담하게 보내는 멋진 어른도 있더라. 요즘은 너무 노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느라 지금 시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젊어서 더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시간인데 너무 여유로운 건 아닌가. 사람이 간사한 것이, 작년에 정신없이 워킹맘으로 살아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막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퇴사 1년 차에 또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