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 ( 존 윌리엄스의 《 스토너 》 (1965)를 읽고)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저 / 이승욱 역 / 알에이치코리아 / 1965

스토너 초판본 - 예스24
전 세계 수많은 문학 애호가들의 인생 소설로 손꼽히는 명작 『스토너』가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표지로 출간된다. 50여 년 전, 이 책의 초판은 출간 1년 만에 절판되었지만 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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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감상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
표지 이야기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초판본의 표지 그대로이다. 시절을 드러내듯 단순하고 옛스럽다. 그런데 바탕 노란색의 색감이 예쁘고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가 연구실의 창을 통해 대학 캠퍼스를 바라보는 풍경을 단순하게 그려낸 것 같아 인상 깊다.
작가 정보 (존 윌리엄스 1922-1994)

《스토너》를 읽은 사람이라면 작가인 존 윌리엄스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스토너' 임을 알아챌 것이다. 사진 속의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읽는 내내 내가 그려왔던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하여 놀랐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서 제2차 대전에 참전했고 전쟁 후, 대학에서 스토너와 같이 문학 교수가 되었다. 소설 속 윌리엄 스토너처럼 생전에는 평범하게 교수로서 살았고 사후에 그가 쓴 소설 등이 재조명 되어《스토너》(Stoner, 1965), 《부처스 크로싱》(Butcher's Crossing, 1960), 《아우구스투스》(Augustus, 1972) 등이 사랑받았다.
줄거리
미국 미주리주를 배경으로 1910~1940년 대를 살았던 윌리엄 스토너라는 남자의 일생.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주리 대학의 교수되어 영문학을 연구하며 평생을 살았다. 전쟁과 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가 그 자신으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일에 대한 열정, 가족, 사랑 그리고 실수와 회환에 대한 이야기.
독서 후 느낀 점 (스포주의)
1965년에 출판된 책이 왜 2000년 대 와서야 재조명받을까?왜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 인생책이라고 호들갑을 떨게 되었을까?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결국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평생을 고투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타인의 기대와 선망을 나의 욕망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고, 정작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며,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스스로조차 알기 힘들다. ‘진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인생의 과제이자 끊임없는 질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과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실패로 간주한다. 그는 권력 있는 교수가 되지 못했고, 이상적인 아버지나 남편, 훌륭한 친구나 아들이 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인생이라 말한다. 물론 스토너 역시 우리 모두처럼 완전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에도 후회가 많았고, 상처도 깊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열정을 쏟았으며,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 그런 그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또 어떻게 해야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 다운 인생’이란 무엇인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영문학 교수가 되기까지 윌리엄 스토너의 삶은 쉽지 않았다. 부모가 가난했고 배우지 못했으며 미국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기 어렵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였다. 하지만 스토너는 고민했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다. 그 선택이 비록 자신과 가족에게 부귀영화를 가지고 오는 선택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35쪽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242쪽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 다운 인생’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스토너는 평생을 미주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살아갔다. 전쟁과 대공황이 뒤섞인 20세기 초중반의 미국 한복판에서 그는 드물게도 돈에 거의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그 선택이 너무도 ‘그답게’ 자연스러워 보여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평생을 경제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조용히 살아간 그의 삶은 오히려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222쪽
공부를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스토너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결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23 쪽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 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나 다운 인생’을 위해 하는 사랑이란?
스토너의 서투른 사랑은 그의 곁에 있었던 두 여인에게 분명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아내를 사랑했음에도 끝내 마음을 닫고 외면한 일, 그리고 불륜에 빠졌던 일은 그의 삶에서 분명한 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단 두 번 있었던 그의 사랑은 진실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사랑들은 그를 감정적으로 더 깊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63쪽
윌리엄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목이 메었다.
171쪽
서투르고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손이 서로를 향해 뻗어 나갔고 두 사람은 어색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중략 나이 43 세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174쪽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 보아야 해요. (캐서린)
‘나 다운 인생’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스토너가 인생에서 가장 크게 후회한 것은 딸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딸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이디스 때문에 그는 무력했다. 결국 그는 아내의 뜻에 순응하며 자신의 사랑마저 포기했고, 가족 대신 일에만 몰두했다.
어쩌면 조금만 더 포기하지 않고, 아내와 딸 사이에서 마음을 열고 다투며 노력했다면, 그들의 삶은 조금 더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스토너 삶에서 가장 안타깝고 아픈 부분이다.
107쪽
책상 위에 스탠드 불빛이 아이에 머리카락에 부딪쳐 반짝이고 그 불빛의 작고 진지한 아이의 얼굴 윤곽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싫지만은 않은 나는 작은 슬픔에 윌리엄은 잠깐 목이 메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109 쪽
사랑과 염려라는 가면을 쓴 전략이었으므로, 그는 그 앞에서 무기력했다.
113 쪽
그 뒤로 그는 예전에 집에서 보내던 시간 중 대부분을 대학에서 보내며 너무 외로워서 잠시라도 딸을 언뜻 보거나 말을 한마디 나누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때만 일찍 퇴근했다.
중략) 그래서 그는 가끔 이만 하면 살만 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생에 무엇을 기대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과연 이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심하고, 죽어가는 순간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후회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함께 들여다본 독자들은, 그가 '자신으로서' 살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고군분투해 왔는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그런 유연함을 미덕으로 여긴다. 남들이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선택을 한다면 보다 편안한 삶을 살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는 없다. 스토너의 질문이 가슴에 남는다.
“넌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나?”
243쪽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아주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이 이불 위를 움직여 그녀의 손에 가닿았다.
246쪽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덧,
《스토너》를 읽으며 ‘내가 나로 산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를 보다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창업자 ‘료’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인상 깊었다. 최근에 그녀의 책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이 출간되었다고 하여 《스토너》와 병행하며 읽었는데 좋았다. 작가가 인스타에 게재했던 글 중심으로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이 많아 호불호가 클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되는 문장이 많아서 좋았다.


독서의 순간들
오랜만에 전자책으로 읽었다. 작년에 문학동네 북클럽 신청하면서 《스토너》를 받아두었는데, 읽지도 않고 알라딘에 팔았나보다. 다시 알라딘에서 사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 전자책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다.

니니랑 니니아빠랑 <바다 100층 짜리집> 뮤지컬 보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성균관대 캠퍼스였는데 백년만에 캠퍼스에 앉아서 책보니까 마음이 이상했다. 글로벌 라운지는 왜 어느 학교에나 있는 것일까?

<료의 생각없는 생각>도 함께 읽으며

《스토너》 마지막 장면을 읽고 책을 덮으며 (전자책인데 뭘 덮은거지?)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하늘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더욱 그랬을까?

독서모임에서도 함께 읽어서 더욱 풍요로운 책읽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