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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30일 매일 읽기

내가 선택한 삶에 이름을 붙이다 | 《소유냐 존재냐》 (1976)

by 봄날곰 2026.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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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차경아 옮김/ 까치
 
한 줄 감상
소유하는 삶에서 존재하는 삶으로의 방향전환을 통해, 인간과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묻는 책
 
추천 독자

  • 더 많이 소유하고 성취하는 것이 정말 좋은 삶인지 의문이 드는 사람
  • 소비와 경쟁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
  • 기후위기와 기술 발전의 시대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작가 정보
(하기 포스팅 참고해 주세요 🤗)

조금 덜 벌고, 조금 더 나답게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2022)

 

조금 덜 벌고, 조금 더 나답게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2022)

기본 정보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장혜경 옮김/ 김영사 (2019년, 라이너 풍크 엮음) 한 줄 감상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실감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적일 수 있는

ssohee07.tistory.com

 
읽고 난 후 생각

얼마 전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내가 퇴사를 결정했던 이유를 돌아보았다. 조금 덜 벌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삶을 틀었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런 삶을 원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부족했다.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그 언어를 얻었다. 내가 무엇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싶었는지가 전보다 명징해졌다.

 

(23쪽) 이러한 경제체계의 발달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사회가 말하는 좋은 삶을 별다른 의심 없이 좇았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이루고, 더 나은 조건을 갖추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만큼 성취하지 못하면 좌절했고,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돌아보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가져야 하는 사람인지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17쪽) 성장도상에 있는 인간은 자기 고유의 진정한 자율적 소망과 관심, 의지를 대부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과 감정적 유형이 그에게 밀어붙이는 뜻과 소망, 감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토록 원했던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정말 나의 욕망이었을까.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도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시절의 내가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잘 살아보려고 무척 애썼지만 정작 나에게 좋은 삶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묻지 못했다.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좌절하고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이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간과 관심과 마음을 인색하게 내어주기도 했다.

퇴사는 어쩌면 그런 삶에서 빠져나오려는 첫 번째 방향전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프롬의 언어를 빌려 그 선택을 돌아보니, 나는 소유적 실존양식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서 내가 지향하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130쪽) 다시 말하면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며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적 삶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로 자신을 증명하는 대신 사랑하고, 생각하고, 귀 기울이고, 경험하며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삶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보다 훨씬 큰 의미로 남았다. 얼마나 적게 소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 시간과 관심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묻게 했기 때문이다.
뜨끔한 순간도 많았다. 요즘 기록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데,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록해두는 것조차 소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었다. 나는 경험하는 대신 사진을 소유하고, 기억하는 대신 기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기록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 깊어지기도 하고,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을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결국 기록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일 것이다. 경험했다는 증거를 모으는 기록이 아니라,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한 기록을 하고 싶다.

(161쪽)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이성의 힘, 사랑의 힘, 예술적 및 지적 창조력 등 이 모든 본질적 힘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불어난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물건은 사용하면 닳고 돈은 쓰면 줄어들지만 사랑하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능력은 사용할수록 커진다. 앞으로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더 많이 실천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개인의 삶에서 시작한 질문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넓어졌다. 《소유냐 존재냐》가 처음 출간된 것은 1976년이다. 프롬은 이미 반세기 전에 끝없는 성장과 소비를 좇는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이 만든 체계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자연 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에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인간은 오히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쪽으로 달려온 것처럼 보인다. 기후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도 성장과 소비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방향을 바꾸지 못하는 인간을 생각하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요즘에는 AI가 인간의 노동과 창작, 삶의 방식을 빠르게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된다. 얼마나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전에, 그것이 인간에게 정말 좋은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술은 인간을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그렇게 얻은 시간과 가능성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특히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이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AI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무엇을 많이 가지고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이 더 중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284쪽) 문제는 다만 방향전환인 것이다. 새로운 방향으로 일단 내딛기만 하면 다음 발걸음도 저절로 뒤따를 것이며 방향이 옳기만 한다면 그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갑자기 존재적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고, 비교하고, 사회가 만들어낸 욕망에 흔들릴 것이다.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 사이를 계속 오갈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경계하며 살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향해 살고 싶은지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나는 이미 몇 년 전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그 선택을 다시 돌아보았다면, 《소유냐 존재냐》는 내가 선택한 삶에 조금 더 분명한 이름을 붙이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주었다.

반세기 전 프롬이 바랐던 방향전환이 결국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기후위기와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의 미래를 낙관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어느 방향으로 휩쓸려가고 싶지 않은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은지는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독서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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