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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30일 매일 읽기

성장보다 보호가 필요했던 아이 | 《여름을 건너》 (2018)

by 봄날곰 202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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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여름을 건너/ 야프 로번/ 박영옥 옮김/ 문학과지성사

한 줄 감상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서 너무 일찍 성장해야 했던 소년의 여름 이야기

추천 독자

    • 어른의 무책임이 아이의 삶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질문하는 사람
    • 아름다운 성장담보다 성장의 이면에 놓인 상처와 책임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 인간의 불완전함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
    •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을 그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작가 소개 | 야프 로번 (Jaap Robben, 1984~)

Singel Uitgeverijen / © Anna Perger


네덜란드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 2004년부터 시와 동화,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 왔으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고향 네이메헌의 도시 시인으로 활동했다.

2014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Birk》로 네덜란드 서점인상과 여러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후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여름을 건너》(2018)는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1차 후보에 올랐으며, 2023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2022년에는 세 번째 장편소설 《Schemerleven》을 발표했다.

어린이와 성인 독자를 위한 작품을 모두 써온 작가로, 특히 어린 인물의 시선을 통해 가족 안의 상실과 외로움,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그려낸다.

( ※ 작가 소개는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작성함.)
 
덧) 영화 정보

Zomervacht (Summer Brother)
2023년 · 네덜란드 · 드라마
감독: 요런 몰터(Joren Molter)

 

읽고 난 후 생각 (스포 주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극찬한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여름을 건너》를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올리브 키터리지》와 《다시, 올리브》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녀가 이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나는 이 책에 푹 빠졌다. 브라보, 브라보, 이 말밖에는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나를 구원해 주었다.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었다는 소설. 그러나 책을 덮은 내게 남은 것은 위로보다는 깊은 슬픔이었다. 이 소설이 어떤 의미에서 그녀를 구원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나에게는 다른 방향으로 의미가 남았다.

《여름을 건너》는 열세 살 소년 브라이언과 중증 장애가 있는 형 뤼시엔의 이야기다. 부모는 헤어져 살고, 브라이언은 무책임한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 돌봄 시설에서 생활하던 형이 여름 동안 집에 머물게 되면서 브라이언은 자신조차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형의 일상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형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는 일은 물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까지 감당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견뎌내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책은 소년의 성장소설로 소개된다. 브라이언은 형과 여름을 보내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형의 세계를 발견하고, 형을 단순히 돌봐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직 있다. 형의 두 눈에는 여전히 우주가 담겨 있다. (389쪽)

 
형의 눈에서 하나의 우주를 발견할 만큼 브라이언의 시선은 달라졌다. 분명 이것은 성장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성장을 마냥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브라이언이 형을 이해하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동안, 정작 브라이언을 이해하고 지켜주는 어른은 어디에 있었을까.

브라이언은 형을 돌보며 많은 것을 배우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일들은 너무 가혹했다. 성장할 준비가 되어서가 아니라 성장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나는 브라이언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보다, 왜 그 어린아이가 그렇게까지 성장해야 했는지가 더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브라이언이 끊임없이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이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가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걸.
깨어 있고, 숨 쉬고 있고,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는 걸. (268쪽)

 

엄마를 보려고 애를 쓸수록, 엄마는 점점 더 작게 멀어져만 갔다. (273쪽)

 
엄마는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이 아니다.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지만 브라이언의 곁에는 없다. 아이는 엄마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고, 엄마의 흔적을 찾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엄마에게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어도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 형을 지키려 애쓰고 어른들에게 맞설 만큼 의젓해 보이지만, 브라이언은 결국 엄마가 필요한 열세 살 소년이다. 작가는 그 외로움을 아주 섬세하게 보여준다.

손가락 사이를 쓰다듬으면 결국 내가 나를 만지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중략)

그때 우리는 막 철길 건널목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아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놓더니 손가락 사이 접힌 살을 천천히 쓰다듬어주기 시작한 순간이라 또렷이 기억한다. (140쪽)

 
엄마의 손길을 스스로 재현해 보지만 그때의 느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작은 손길 하나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엄마가 브라이언에게 다정한 손길을 건네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유독 귀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브라이언과 나는 작은 희망을 붙잡아도 될까? 엄마와의 관계가 온통 상처와 원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브라이언에게도 엄마의 다정함을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소설의 마지막 사건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희망으로 가득한 소년의 성장담으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브라이언의 주변에는 폭력과 범죄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고,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사건에 휘말린다. 결국 브라이언은 세입자 에밀의 머리를 내리치고, 에밀은 정신을 잃는다. 브라이언 주변에서 그나마 좋은 어른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이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아버지는 장애가 있는 뤼시엔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모든 일을 거칠게 덮으려 한다.
 

“우리가 서로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우릴 챙기겠니? 아무도 없어.” (383쪽)

 
아버지의 말은 가족끼리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내게는 무책임한 어른이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로 들렸다. 브라이언의 폭력은 분명 잘못이다. 그러나 아이를 그런 상황으로 내몬 어른들의 책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더욱이 형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과연 브라이언을 보호하는 방법일까. 잘못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브라이언에게는 형을 희생시켰다는 또 다른 죄책감이 남을지도 모른다.

브라이언이 애쓰는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안타깝다. 그 아이가 애쓰기를 포기하면 삶이 더욱 고단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정작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은 충분히 애쓰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성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성장이 아니라 보호였다.

책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고, 태어난 환경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며,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작품 해설에서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닿으려는 모습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끝내 위로받지 못했다. 그저 브라이언의 앞으로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데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으로 브라이언의 삶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내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가 잡아주었던 손에서, 브라이언을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세입자 에밀에게서, 형제 사이에 생겨난 애정에서. 좋은 어른 한 사람만 있었어도 아이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제야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이 작품 사이의 공통점도 조금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끊임없이 실망을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닿으려고 애쓴다. 다만 《여름을 건너》에서는 그 애씀을 감당하는 사람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사실이 유독 아프다.

브라이언의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희망이란 반드시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삶이 가능하기를 끝까지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스트라우트가 말한 구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녀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을 읽고도 여전히 브라이언에게 더 나은 삶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브라이언에게는 그저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고 싶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아이의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
 
독서 기록

 
요즘 니니가 발레 하는 동안 학원에 앉아서 책 읽는 시간이 참 좋다.

경쾌하고 청아한 어린이 발레음악 들으면서 조용히 책 읽는 나만의 시간.

사실 이번 책은 읽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 발레 학원 가는 날에 책을 안 챙겨 와서 '그럼, 이 시간에 뭘 하나? 휴대폰 보면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은데...' 생각했는데, 마침 만났던 친구가 흔쾌히 빌려준 책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고 이틀 만에 다 읽게 되었다.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다 읽고서야 많은 물음표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좋은 책은 많은 질문을 남긴다.

똑똑하거나 깊지 않은 나의 생각이지만, 남겨보고 싶어서 블로그에 기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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