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정덕애 옮김/ 민음사/ 1988

다섯째 아이 - 예스24
20세기 후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도리스 레싱이 예언하는 섬뜩한 인류의 미래호러 기법으로 그린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세기말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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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감상
괴물은 태어난 것일까? 만들어진 것일까?
작가 정보 - 도리스 레싱 (1919-2013)


1919년 이란에서 태어나서 짐바브웨에서 성장했다. 영국의 20세기 ~21세기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94세에 생을 마감했다. 87세, 늦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여성과 가족문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식민지, 인종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노벨 문학상을 시상할 때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여성 경험을 회의주의적·불타는 듯한 통찰로 탐구한 서사시적 여성 작가”로 평가했는데 그녀의 작품을 미루어보아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표지 이야기
표지가 이야기를 잘 담고 있어서 섬뜩하다. 표지 덕분에 (?) 보관하고 싶지 않은 책이 되었다. 내 눈에는 세 아이가 보이는데 지켜보는 어른들을 외면하거나 잔뜩 주눅 든 채 마주 보고 있어서 매우 불편하다.
줄거리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다복한 가정을 꿈꾸는 영국의 평범한 젊은 부부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기피했던 1960년대 말, 영국의 시대적 분위기와 달리 아이를 많이 갖고 싶어 했던 그들은 다섯째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남과 다른 (괴물 같은) 다섯째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이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다섯째 아이로 인해 가족이 불행해지고 파탄 났다고 믿는 이 부부. 그 불행은 과연 다섯째 아이가 가지고 온 것인가? 다섯째 아이가 괴물이어서 그들이 불행해진 것일까? 그들이 아이를 괴물로 믿었기 때문에 불행해진 것일까? 불행은 원래부터 이 가족에게 심겨 있었던 것일까? 다섯째 아이로 인해 생겨난 것일까? 부모라면 읽고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다.
독서 후 느낀 점 (스포주의)
언제나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누구나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 있다. 바꾸기 힘든 가치관이 있다. 평생 가지고 살았던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는 어렵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아이들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원했다. 부부의 경제 상황, 사회적 여건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믿음 대로 연달아 아이를 넷을 낳고 무리해서 호텔 같은 큰집을 마련했다. 해리엇의 엄마와 데이비드의 부모가 말렸지만 그들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삶은 중요하다. 주위의 말에 휘둘리는 삶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무섭다. 언제나 자기 말이 맞고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부모이자 형제, 자매, 그리고 자식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클 것인가?
31쪽
이제 보아라, 자신들의 완고한 개성을 방어하려고 사력을 다한 것이 옳았다. 그 개성은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가장 최상을 선택했다.- 바로 이 삶.
그들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것인가?
남들과 분명히 다른 다섯째 아이, 벤을 낳은 그들 부부를 동정한다. 벤은 남다른 아이다. 키우기가 어렵고 부모를 계속 한계로 몰고 간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극단적인 아이이다. 분명히 부모는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이다. 그들의 삶이 이해가 되고 안타깝다. 자기 자식을 죽음과 같은 수용소에 가뒀다가 다시 데리고 와야 했던 그 절망적인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아이를 자꾸만 괴물로 생각하는 그들. 아이가 괴물로 인정받아야 이 불행에서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일까? 보통의 부모들은 남들이 자식을 손가락질하면 보듬어 주기에 필사적인데, 왜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괴물로 인정받지 못해서 안달일까?
85쪽.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오, 그 애를 치어요. 제발, 그래요……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152쪽
자신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는 육체의 껍질이 한 겹 벗겨진 것 같았다. 물론 진짜 표피는 아니지만, 아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라지기 전 까지는 전혀 의심해 보지도 못하는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누가 괴물인가? 왜 자식을 괴물로 인정받아야 하는가?
다섯 째 아이, 벤은 괴물로 태어난 것일까? 그의 부모가 만든 것일까? 벤은 분명 남다른 아이고 키우기 힘든 아이지만 병원과 학교에서 큰 문제가 없는 아이라고 한다. 해리엇은 믿기 힘들다. 가족을 위협하는 이 아이가 괴물이 아니라고 한다. 억울하고 미칠 노릇이다. 그렇지만, 해리엇이 한 번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없었을까? 자신의 생각을 깨고 나와서 다른 것을 보려고 했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안타깝다. 벤이 괴물이 아니라고, 자신이 변화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을 했다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도 내 생각에 갇혀 다른 면을 보지 못해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면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니까 아무도 나에게 잘못된 생각에 대해 호되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알아서 생각하고 의견을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좁은 세계에 갇혀 남이 틀렸다고 믿으면서 끊임없이 불행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이 두렵다. 특히 딸에게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 생각대로만 살아라고 요구하는 엄마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해리엇처럼 자식이 괴물이라고 믿고 남들에게 이를 강요하면서 지옥 속에서 살면서 자신이 생각이 지옥인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만약, 해리엇이 벤을 괴물이라고 믿지 않았다면, 수용소에 보내지 않았다면, 조금 더 보듬어주었다면, 벤은 다른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아이를 많이 낳고 사람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한 둘의 아이와 함께 그릇에 맞게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138쪽
브래트 박사에게 전문가와 약속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제발 저를 히스테리컬 한 바보로 보지 마세요. “
143쪽
해리엇은 계속 주장했다. ”난 그런 말을 누가 했으면 하고 원하는 거예요. 난 그런 사실이 인정되기를 원해요.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난 참을 수가 없어요. “
148쪽
저 앤 뭘 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저 애도 본다고, 저 애도 인간 세상을 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아마 그의 감각은 아주 다른 사실들과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164쪽
아마도 그 애의 이상한 눈은 이 세상과는 아주 다른 빛의 상태에 적응하기 위한 것일 거야.
177쪽
사람들은 항상 그를 제대로 보는 일을, 그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을 거부할 것인가?
괴물을 없애면 행복이 찾아오는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아이들은 커서 재빠르게 그들을 떠난다. 부부는 벤 때문에 아이들이 집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왜, 나머지 네 아이들도 이 가정을 이렇게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들 부부의 바람대로 벤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할 수 있었던 가정이었을까? 의문스럽다.
네 아이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식을 직접 죽음의 수용소에 보내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식을 괴물로 믿고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부모. 자신들도 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라도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떠나고 싶을 수밖에 없다. 삶의 고통에 갇힌 부부에게는 이 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괴물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일까? 괴물은 처음부터 없었고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이 괴물은 괴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만 살며 그들을 괴롭힌다. 어떤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 완벽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가 없다.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괴물을 만드는 것을 경계하는 것. 도리스 레싱이 부모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104쪽
하지만 조용해진 순간 제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우리들도 보내실 거예요?” 조용하고 둔감한 작은 그 애는 도로시의 축소판으로, 불필요한 말은 안 했다. 그러나 그 애의 크고 푸른 두 눈은 공포로 가득 찬 채 엄마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145쪽
이 가족의 생활 패턴이 정해졌다. 그리고 미래의 패턴도 그럴 것이었다.
152쪽
해리엇은 만약 자신이 데이비드를 이제 처음으로 만난다면 그를 딱딱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딱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그녀가 느끼는 딱딱함은 인내심이었다. 그는 만사를 버티어내는 방법을 알았다. 그 두 사람은 여전히 비슷했다.
158쪽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데이비드의 인생…… 루크와 헬렌과 제인, 그리고 폴의 인생에도. 특히 폴의 경우가 가장 나빴다.
그녀의 사고는 이런 틀 안에서 맴돌았다.
159쪽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말하였다.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증오하는 톤이 있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그가 물었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중략
“누구냐고? 우리가 그렇게 한 거야.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우리는 우리가 믿고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졌어. 그리고…… 불운이 닥쳤지. 그게 다야. 우리는 쉽게 성공할 수도 있었어. 우리가 계획했던 그대로 될 수도 있었어. 이 집안에 여덟 명의 아이가 있고 모두들 행복해하는…… 글쎄, 가능한 한”
덧,
이 책의 후속 편이 있다. <벤, 세상 밖으로(Ben, in the world, 2000)>이라는 작품인데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작가가 22년이 지난 후, 후속 편을 냈으니 작가에게 이 작품 속의 벤이 큰 의미였을 것이다. 가족을 떠나 세상에서의 벤을 보여주는데 예상대로 힘든 삶이어진다. 가족 속에서 소외당한 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가족의 책임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독서의 순간들
홍대의 멋진 북까페 ‘책익다’에서 와인 마시면서 행복하게 책을 펴 들었는데 내용이 너무 안 행복했다…

니니가 <약속의 오로라핑> 읽을 때 옆에서도 읽었고

독서모임 가서 이야기 나누며 다시 한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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