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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30일 매일 읽기

다 커버렸다고 믿는 소녀에게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을 읽고)

by 봄날곰 2025.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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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은희경 장편소설/문학동네/1995
 


한 줄 감상

이미 다 커버렸다고 믿는 소녀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작가 정보 - 은희경 (1959-)

"시대를 도피한 자의 반성문" 펴낸 은희경 작가 : 네이트 뉴스


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여성작가. <새의 선물>(1995)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여 이상문학상, 동서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등을 수상했다. 작가 자신을 냉소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주위사람들을 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애틋하고 재밌다.
 

 

줄거리

삶을 보는 눈이 자못 냉소적인 30대 여인이 애인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쥐를 보면서 사랑에도 삶에도 시큰둥 해보이는 그녀의 옛이야기가 시작된다. 열두 살 진희는 1970년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소녀다. 부모 없이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이모, 삼촌과 살고 있다. 열두 살에 자기가 다 커버렸다고 믿는 진희의 눈을 통해 진희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 공부 잘하는 삼촌, 연애에만 관심 있는 천방지축 이모, 그리고 외할머니 댁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냉소적인 우리의 진희를 통해 듣는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정겹고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부모없이 자라서 가슴속에 상처를 꽁꽁 묻고 사는 진희의 어린 시절은 참 애달프다. 하지만, 진희에게 지극 정성인 외가 식구들, 언제나 우당탕탕 시끄러운 이웃들 사이에서 조금씩 커가는 진희를 보는 것이 즐겁다. 스스로는 다컸다고 믿겠지만.

작가가 책의 처음에 소개하는 시를 통해 진희의 어린시절이 시작된다. 

자크 프레베크의 「새의 선물」(Le Cadeau d’oiseau)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독서 후 느낀 점 (스포주의)

열두 살부터 자신과 거리 두기를 하는 소녀  vs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삶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

 진희는 열두 살에 '보여지는 나'와 '보는 나'를 분리한다.  웬만한 성숙한 어른도 해내기 힘든 삶의 태도가 아닌가? 부모 없이 외가에 얹혀 사랑받기 위해 어른들 눈에 나는 짓은 절대 하지 않고 살아가는 진희가 안쓰럽다. '진짜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보여주는 나'로 소통한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진희를 어른들은 예뻐하지만 '고운 정'만 줄 뿐, '미운 정'까지 진심으로 다해 주는 이가 없다.

진희가 보기에 스스로와 거리 두기가 안되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쌍하고 미련하다. 진희의 이모는 해맑다. 사랑하면 사랑에 불타오르고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외할머니에게 막내딸로 매번 구박받지만, 모든 것에 진심이고 투명한 이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동정을 받는다. 바보 같기만 한 이모가 진희는 한심하다.

세 들어사는 광진테라 부부는 어떤가? 아줌마는 매번 바람피우는 아저씨한테 찍소리 못하고 매 맞고 산다. 아이를 놔두고 도망가거나 남편 없는 새로운 삶에 맞설 배짱이 없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가 애처롭다. 진희의 눈에는 안쓰럽고 한심하다. 

진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무도 부정 안 하겠만)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삶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나이 마흔이 되도록 자신과 거리 두기가 쉽지 않다. 물론 미성숙한 인간의 모자람이 크다. 나이가 어릴 때는 더 했다.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쉽게 일희일비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저 좋았고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기면 쉽게 좌절했다. 누군가 사랑을 주면 세상의 왕이라도 된냥 거만하게 사랑받았고 그 사랑을 거두어 가면 세상이 모두 무너진 것 마냥 상처받았다. 일어난 일에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한 영향도 생각하지 않았다. 삶에 휩쓸려 다니며 행복해하고 또 좌절했다. 아니, 과거형이 아니고 지금도 분명 그런 면이 있다. 진희가 보기에 하찮은 어른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52쪽

이모가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또 비벼 되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연애 감정이었다.

92쪽

그러나 나는 미운 정을 얻기 위해 할머니에게 함부로 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없다.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 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143쪽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 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183쪽

아줌마처럼 강인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자기가 익히 하는 일은 어떻게든 이겨 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닥쳐올 일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그것이 아줌마처럼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화되 자기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의 치명적인 점이다.
 
그렇다면, 성숙한 삶이 나은 삶이고 미성숙한 삶은 부족한 삶인가?

미성숙한 인간, 그리고 삶을 도무지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나로서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의 삶이 더 나은 것일까? 온갖 일에 일희일비하면서 삶에 휩쓸려 다니는 것은 물론 효율적이지 못하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삶을 분석해 보면 일어난 일들이 특별한 일들도 아니다. 남들이 모두 겪는 이야기에 혼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삶을 컨트롤하는 성숙한 삶이 나은 삶은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진희처럼 살고 싶나?

물론, 아니다. 어릴 때는 철없이 우당탕탕 부끄러운 짓도 하면서 살아보고, 미움도 받고 사랑도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하는 사랑에 세상 끝까지 행복하기도 해 보고 이별하면 또 땅 저 끝까지 무너지기도 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희는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며 성숙한 삶을 꿈꾸지만, 자신의 말대로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살아간다. 완전히 슬프거나 기쁘거나 사랑하는 상태를 피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면서 살아간다. 이는 분명히 나쁜 삶이 아니고 일견 성숙한 삶이다. 내가 절대 살 수 없어 부러운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럽다고 가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246쪽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의뢰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 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273쪽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은 이끌어 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291쪽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켜서 걸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 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 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데 정열을 다 받 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솔직히 진희 같은 성격의 사람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바보 같이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혼자 타고 있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쓸데없이 진지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 많았다. 그런데 아직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전을 생각하면, 바보 같이 인생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그때처럼 또 앞뒤 안재고 모든 것에 뛰어들어서 허우적거리라고 하면 다신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때 겪은 모든 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일들이었고 감정이었다. 그렇게 인생을 분석하지 못하고 냉정하지 못하게 살아와서 그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가 있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더라면, 진희의 삶을 동경했을 것이고, 지금의 나는 진희의 삶이 조금 안타깝다. 40~50대의 나는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재밌다. 딸이랑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살포시 추가해 본다.
 

덧 1, 은희경 작가의 <또 못 버린 물건들>을 함께 읽으며...

은희경 작가의 산문 <또 못버린 물건들>을 읽고 기록한 적이 있어서 다시 살펴보았다. 

또 못 버린 물건들/은희경 산문/난다

또 못 버린 물건들/은희경 산문/난다

또 못 버린 물건들/은희경 산문/난다 또 못 버린 물건들 - 예스24 (yes24.com) 또 못 버린 물건들 - 예스24 언제나 새로운 재미를 약속하는 소설가 은희경이 12년 만에 신작 산문 『또 못 버린 물건들』

ssohee07.tistory.com

 

138쪽

아마 나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는 현재 속에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의 나에 대한 상상이 현재의 나를 바꾸는 것이라고.

이 문장이 <새의 선물>의 진희와 꼭 들어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희의 과거는 현재 속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인생에서 일어나고 또 해석되는 모든 일은 과거에 영향을 받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과거가 어둡다고 그 속에 갇혀있을 필요도 없고 현재는 힘들지만 미래는 괜찮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만을 고집하며 살아갈 수도 없다. 지금을 사는 내가 과거도 현재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진희도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고 현재를 온전히 사랑하면서 조금 다른 미래의 진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덧 2, 웃긴 포인트 + <은중과 상연>과의 연관성

 <새의 선물>은 웃긴 부분이 많아서 그냥 넘어가기에 아쉬워서 몇 문장 기록해 둔다. 이 책은 의미를 따지지 않고 재미로만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캐릭터가 모두 좋아서 사랑받을 것 같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났는데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은중과 상연>을 재밌게 보고 있다. 진희를 보며 이 드라마의 상연의 모습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주위사람들에게 애정이 듬뿍인 인물, 언제나 외롭고 앞뒤 안재고 마음껏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똑똑하고 잘났지만 진정성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2쪽

할머니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지금 할머니가 머릿수건과 밀짚 모자 그리고 호미를 챙겨 뜨는 것을 보면 밖에 나가는 길임을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을 아무 짐작 없이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이모의 버릇이라면 그렇게 뻔한 일에는 절대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이 또 할머니의 고집이다.

53쪽

그러나 할머니와 삼촌 사이의 흐르는 진지한 기류의 정반대 쪽에서 혼돈의 춤을 추는 난기류가 형성돼 있었다. 바로 삼촌의 서울행의 내심 희희낙낙 하는 이모였다.

83쪽

욕탕 속에 뚱뚱한 몸을 척 부려 놓고 누워있는 모습이 어쩌면 삶은 밤 속에 들어있는 살진 밤벌레 같기도 했다.

94 쪽

"너 줄 돈 있으면 해피 주겠다"
 

독서의 순간들

<새의 선물>은 유독 후루룩 읽어버려서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 많지 않다. 전자책으로 읽었고, 카페에서 읽었다.

독서모임 사람들과 함께 읽었는데, 두시간 동안 이 책이야기를 얼마나 즐겁게 했던지. 그러고 보니 책표지가 이렇게나 제각각 일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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