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장편소설/ 정영목 옮김

선택 동기
요즘 빠져있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에서 추천한 책. 맨부커상 받은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도 매우 궁금하고 요즘 독서모임 책 읽느라 바쁜데 얇은 책이라 읽어볼 마음이 생김(?)
한 줄 감상
울분에 차서 했던 작고 평범한 선택은 인간을 어떤 운명의 구렁텅이로 내몰 것인가.
작가 정보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쓰는 작가는 그의 인생을 자꾸만 찾아보게 만든다.
미국 현대소설의 아이콘 필립 로스 별세
출처: 한겨레 신문
독서 후 느낀 점 (스포주의)
모든 책은 연결되는 것일까? 앞서 독서기록을 남겼던 <연을 쫒는 아이>와 상관없이 책을 빼들었는데, 그 책이 생각난다. 역사적 상황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나.
전쟁 후 성장하는 한국에 80년대에 태어나서 90년대부터 의식적으로 살았던 우리 세대에게 평화라는 것은 항상 디폴트였다. 평화롭지 않은 상태는 뉴스로만 봐왔다. 물론 크고 작은 역사의 상황에 서있었지만, 전쟁은 책, 뉴스에서만 본 일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어땠나. 이 책에서 묘사하는 전쟁의 단편적인 모습은 참혹하다. 멀고 먼 미국땅의 젊은이도 이 역사의 운명에 빨려 들어가 끔찍한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새삼 한국 전쟁과 그 역사적 영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젊은이가 전쟁에 휘말리기까지 개인의 운명에 대해서 작가가 말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전쟁에 징집되어 가는 것이 무서워서 어떻게든 피하려던 젊은이가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아래 문장에서 간결하게 드러난다.
239쪽
그랬다면 그의 교육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동안 그에게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려 했던 것은 나중에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이 “불가해한 경로” 가 말하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고 울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작가가 주인공의 심리와 심경을 치밀하게 묘사할 때, <죄와 벌>의 도스토옙스키가 떠올랐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선택하는 것들이 별로 놀랍지 않고 심지어 정당해 보인다.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면 설득되지만 그 감정이 온전하고 올바른 감정인지는 쉽게 간과된다. 아래 문장에서 화자의 어머니가 그 감정이 맞는 것인지 질문할 때, 나도 그때서야 화자에게서 벗어나 이 것이 올바른 일인지 질문하게 된다.
184쪽
너는 니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 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 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결국 주인공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 감정이 책의 제목인 ‘울분’이 아닐까? 이 울분에 차서 하는 작고 평범한 선택들이 결국에 주인공이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전쟁이라는 운명의 늪으로 이끈다. 그가 발버둥 칠수록 자꾸만 빠지고 마는 그 운명의 구렁텅이. 우리는 어떤 운명을 피하고 싶어서 거기 더 집착하고 빠져들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운명에 대해 좋은 질문을 하게 하는 책이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전쟁 묘사, 성적 경험 묘사, 동물을 도살하는 장면 등이 거칠고 날 것으로 묘사된 부분은 읽기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 또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니 마주 보아야 하겠지만, 읽는 내내 언짢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작가가 미국의 역사가 미치는 개인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많이 풀어썼다고 하니, 작가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도 흥미롭다고 하니 한번 읽어보고 싶다.
연관해서 읽고 싶은 책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예스 24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예스24
‘레드 콤플렉스’와 ‘매카시즘 강풍’이 휘몰아치던 야만의 시대사랑과 배신, 복수의 광기에 짓눌린 한 남자의 치명적인 파멸의 드라마!작품을 통해 미국의 역사와 사회뿐 아니라 그 구성원
www.yes24.com
발췌와 단상
17쪽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기쁜 마음으로 배운 것이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65쪽
그러나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단상) 반종교적인 작가가 인식하고 그리는 사후세계가 드러난다. 필립 로스가 그리는 사후세계가 과거에 갇힌 인간이다. 작가가 말하듯 이 것이 지옥인가? 그런데 한평생 즐겁게 살다 떠난 사람은 과거에 갇혀 또다시 천국에 지내는 것인가? 아.. 그래서 현생을 잘살아야 하는 것인가?
78쪽
아버지의 불안에 나도 둘러싸이고, 불길한 예감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이오에서 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단상) 불안하게 느끼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늪에 빠진 사람처럼 더 빨려 들어가는 아이러니.
123쪽
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나의 잘못일까? 전에는 문제라고는 한 번도 일으켜본 적이 없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빠르게 문제 투성이가 되어버렸을까?
단상) 나사가 하나 빠진 것이 인생에는 얼마나 큰일로 돌아오고야 마는 건지. 그렇게 돌아오는 작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기 시작하면 또 얼마나 큰일이 굴러올지 모를 일이다.
171쪽
그 애 전체가 여전히 그것, 유년을 벗어나서 몇 년 지나지 않아 처음 술을 마시게 하고, 나아가 파멸의 가장자리까지 가게 했던 것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올리비아는 뼛속까지 굴복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단상) 올리비아의 처음 나사 풀림을 이야기하는 걸까?
227쪽
여기서 토요일마다 풋볼 시합이나 구경한 너희들, 한반도에서 토요일마다, 또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일요일마다 총에 맞지 않는 너희들이 얼마나 운이 좋고, 얼마나 큰 특권을 누리고 있고, 얼마나 복이 많은지 알고 있나?
단상) <연을 쫒는 아이>에서 고민했던 문제이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는 것인지가 인생과 운명의 많은 부분을 정하고야 만다.
독서의 순간들
침대에서 읽고

딸내미가 문화센터 수업 끝나길 기다리며 읽고

밤에도 읽고

책상에서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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