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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30일 매일 읽기

언젠가는 꼭 마주하고 들어야 할 이야기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봄날곰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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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선택 동기
독서모임 선정 책. 솔직히 한강 작가의 책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했다.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받았을 때,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서 인간의 잔혹함을 묘사하는데 사람이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다니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서 내내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피해 다녔지만,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작가 정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님을 소개할 필요 있을까요?!
한강 (작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강 (작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강(韓江, 1970년 11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작가이다.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등단하였다. 출판업계에 종사하다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어 후진

ko.wikipedia.org

 
한 줄 감상
언제 가는 꼭 마주하고 들어야 할 이야기
 
독서 후 느낀 점 (스포주의) 

드디어 읽게 된 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 작가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독자는 들어야 할 이야기를 아프게 듣게 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누구나 이 이야기가 1980년 5월 18일의 민주화 운동 이야기임을 알기에 마음이 무거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더 깊게 알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 이야기가 처참하고 슬픈 역사의 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한강 작가가 글로 써서 이 이야기들이 더욱 아프고 슬프게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 작가는 내내 슬픈 눈을 껌벅껌하며 담담한 어조로 천천히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현실적으로 끔찍했던 그날들과 대조되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광주 시민들의 삶을 그렇게도 평화롭고 시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다. 
 

38 쪽 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너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39쪽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손꽃을 감싼 것 같은 노크 소리.

55쪽  캄캄한 이 덤불숲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기억이 바로 그거였어 내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던 그 밤의 모든 것 늦은 밤.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던 습기 찬바람. 그게 벗은 발등에 부드럽게 닿던 감촉. 잠든 누나로부터 희미하게 날아오는 로션과 파스 냄새. 삐르르 삐르르 숨죽여 울던 마당에 풀벌레들 우리 방 앞으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커다란 접시꽃들 내 부엌머리방 맞은편 블록 담을 타고 오르는 흐드러진 들장미들의 기척. 그러다가 두 번 쓰다듬어 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 감은 얼굴.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의 묘사가 이 평화가 다 깨진 후 돌아갈 수 없게 된 현실을 더욱 아프게 와닿게 한다. 작가는 끔찍하고 무서운 것을 설명해서 그날을 표현하지 않고 더 이상 이 전의 삶을 살 수없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날의 끔찍함을 극대화한다.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 이후, 40여 년이 흘러서 이제야 왜곡 없는 역사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역사시간에 배우는 일련의 공개된 사실들 만으로 그날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특히 광주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광주시민들의 이야기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남의 나라 역사처럼 흘려보내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면,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그저 역사시간에 사실로서 흘려보내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로 함께 눈물 흘리며 배우고 생각할 수 있다. 역사를 표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도 함부로 조롱하거나 비하할 수 있는 인간은 없지 않을까?

이 아픈 이야기를 해야 했던 작가의 사명이 마음 아프고 걱정이 된다. 어렵게 나온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깊숙이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책을 읽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끝까지 도청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했어야 했는지, 남은 광주 시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양심'에 대해 생각했다. '양심'은 대단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같이 하찮은 사람에게도 일부 있을 수 있다. 대단히 영웅적인 사람들 이어서 끝까지 싸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저 양심이 있는 우리 주위의 아저씨, 아줌마, 언니, 오빠 아닐까?

45 쪽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면 너는 생각했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중략)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113 쪽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도청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나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던 걸까요.

114 쪽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아직 양심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도무지 모든 것들이 정의롭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괴롭다. 
 

79쪽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99 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광주는 어디에서나 만들어지고 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우리가 열심히 서로 이야기를 해댄다면, 완전히 고립되어 외롭게 억울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많이 많이 읽고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207쪽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돼 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발췌 및 단상 

21쪽
그 밤 빽빽이 강당을 메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문득 둘러보며 마치 이곳에 집결하기로 약속한 군중 같다고 너는 생각했다.
 
29 쪽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58 쪽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85 쪽
이제 그녀는 24 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불길을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난 5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 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단상) 왜 살아남은 사람이 죄책을 가져야 하는지...
 
86쪽
그냥 눈 딱 감고 살아주면 안 되겠냐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 그냥 다 잊어불고 남들같이 대학가서 내 밥벌이 내가 하고 좋은 사람 만나 살고 그렇게 내 짐을 덜어주면 안 되겠냐.
 
단상)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의 마음들..
 
95 쪽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34쪽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75쪽
희생자가 되어선 안 돼라고 선희 언니는 말했다. 우리들의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나둬선 안돼.
 
181쪽
네 아버지 생전에 나한테 하던 말이 그때 내가 울지도 않고 뜬장 옆에 풀을 한 움큼 끊어서 삼켰다던디. 삼키고는 쪼그려 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움큼  끊어다 씹었다던디.

단상)깊디깊은 슬픔..
 
183 쪽
형이 뭘 한다고 서울에 있었음 수로 형이 뭘 한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
 
188쪽
암것도 속에 없는 허재비 같은 손을 맞잡고, 허재비 같은 등을 서로 문지름스로 얼굴을 들여다봤다이.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189쪽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독서의 순간들

우리의 동상이몽.


어째서인지 이 책은 계속 늦은 밤에 침대에서 숨죽여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잠이 들면 그렇게도 꿈자리가 사나웠다.


읽기 어려워도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들어야지. 더 많은 사람이 용기 내서 널리 널리 읽기를 바란다. 우리 딸 중학생쯤 되면 꼭 같이 읽고 이야기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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