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장편소설/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 (체코 내 첫 출간-1976)

한 줄 감상
노자처럼 살기를 원하지만 예수처럼 살아서 고통스러운 인간의 이야기
작가 정보 (보후밀 흐라발 1914-1997)

체코의 국민작가. 공산 정권시기에 활동. 밀란 쿤데라와 같은 체코의 유명 작가들이 망명하여 글을 쓰던 시기에 끝까지 체코에 남아 글을 썼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제지공, 철도원, 폐지 줍는 사랑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게 되었다. 후에 이러한 경험이 글에 우러나오게 된다.
대표작으로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나는 영국 왕을 섬겼다>, <가발 달린 사람들> 등이 있다. 특히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폭력적이고 엄중한 공산주의 체제를 살아내며 인간의 근원적인 기쁨과 고통을 찾으려 애썼다.
독서 후 생각
공산주의 체제에서 말할 수 없어 괴로웠을 작가, 보후밀 흐라발. 쓰지 못하고 생각 가득했을 그의 머릿속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노자처럼 맞서지 않고 삶에 의미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비워내길 바랐지만, 예수와 같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해서 고통스러웠을 사람. 일생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시끄러웠을 질문과 생각들이 꽉 차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끔 웃기고 끝없이 연민에 사로잡힐 그 혹은 한타의 이야기.
책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을까? 사고하는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사고하지 못하는 인간도 고통스럽지만 사고하는 인간도 고통스럽다. 워킹맘으로 일할 때는 사는 대로 생각했다. 사고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고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까? 책은 나를 구원해서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요즘 나의 최대 화두였는데 마침 이 책을 만나 더욱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책을 통해 사고하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바깥에서 온다고 한다.
주인공 한타는 평생 많은 책을 읽으며 기쁨과 절망을 느끼면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만으로 현자의 경지에 이른 그의 일생이 좋은 삶이었나? 한 가지로 결론 내기 어렵지만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소멸하길 선택한 그의 인생이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솔직히 책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에게 실망스러운 이야기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한 권의 책으로도 누구보다 멀리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책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많은 책으로 내 성을 공고히 하고 있는가? 내 틀을 깨고 벗어나고 있을까?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 무겁게, 그리고 무섭게 다가온다.
10쪽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11쪽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건,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
(중략) 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것이다.
17쪽
하늘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71쪽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80쪽
“울지 말거라. 네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이제 나는 라이프니츠조차 가르쳐줄 수 없었던 그걸 보러 갈 테니까. 존재와 무의 극한까지 갈 것이다……” 압축기가 땡그랑거리고, 붉은색 신호에 압축판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책이 아니라면, 어디서 구원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한타는 끝내 희망을 찾지 못해 스스로 소멸했지만, 그에게 희망과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책이 자신의 구원의 종착역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분명 그의 삶을 이끌어 온 커다란 존재일 것이다. 그의 인생의 기쁨의 최정상을 차지했던 대부분의 경험은 모두 독서에서 왔을 것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받아들였든 아니든 다음 세계로 뛰어넘었든 아니든 인생의 기쁨 대부분을 책에서 찾았다.
그리고 책이 아닌 바깥에서 더 소중한 것들이 왔다. 그의 사랑인 만차와 집시여인이 그의 인생에 불꽃이었다. 그저 생존 자체만으로 그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었던 그녀들. 힘들게 사고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들었던, 연민과 사랑.
50쪽
불은 그녀 안에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이 없다면 그녀는 살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52쪽
감자 스튜와 말고기 소시지면 족했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가을 하늘에 커다란 연을 날리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었던 여자.
(중략)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마당에서 연을 태웠다.
53쪽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79쪽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야 최상의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 vs 노자)
이 이야기에는 많은 대비와 상징이 있다. 예수와 노자, 한타와 만찬의 삶이 대비된다. 쥐, 책, 지하실, 맥주 등이 상징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에서 지식으로 살아가는 한타의 삶을 잘 표현해 준다. 이번 책은 chat gpt에게 정리를 요청하면서 함께 읽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잘 정리해 줘서 도움이 되었다. (문학적 상징이 이미 많이 해석되어 있는 작품이라면 ai와 함께 읽어나가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노자와 예수의 삶의 태도

한타는 노자처럼 살고 싶었으나 예수처럼 살게 되어 고통스러운 인간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세계에 투쟁하지 않지만 그대로 수용하지도 못한다. 자신과 주변 인간들을 완전히 놓지도 못해 마지막까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작가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답을 구하고자 했겠지만, 아무도 정답을 알 수는 없다. 노자처럼 살 것인가? 예수처럼 살 것인가?
참고) 이야기 속 상징들

33쪽
예수는 기도를 통해 현실을 기적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도덕경』의 노자는 순진무구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법칙들을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38쪽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progressus ad futurum. ‘미래로의 전진’이라는 뜻.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regressus ad originem. ‘근원으로의 후퇴’라는 뜻.이었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낼 것인가? (한타 vs 만차)
한타와 만차의 삶의 대비도 이야기의 큰 축이다. 한타와 만차의 삶 중에 어느 하나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워킹맘이었을 때는 끊임없이 한타의 삶을 동경했고 퇴사 후에 사고하는 시간이 많아진 한타의 삶을 살고 있자니 만차의 삶이 좋아 보인다. 갖지 못한 삶이 언제나 더 좋아 보인다. 이야기 속에는 한타의 시점만 나오지만, 만차는 한타의 삶을 동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타와 만차의 삶의 대비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한타는 생각하는 인간이고 만차는 행동하는 인간이다. 물론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서 살면 이상적이겠지만, 노자도 예수님도 하지 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야기 속에서 만차의 삶은 웃기고 (feat. 똥이야기) 치욕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사고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이상이나 도덕관에 관심이 없다. 바뀐 세상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간다. 한타보다 더 멀리 나아가고 행복해 보인다. 한타에 가까운 작가가 만차와 같은 삶을 많이 동경한 것으로 보인다. 만차는 <도덕경>을 읽지 않은 노자 그 자체이다. 내 주위의 만차들을 존중해야지.
한타는 자동화된 압축기의 등장이라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소멸의 길을 택했다. 요즘 ai가 세상을 바꾼다고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이 것이 도대체 뭔지도 모른 채 압도된다. 한타처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정리될까 봐 두렵다. 혼자만의 생각에만 침잠하지 말고 만차처럼 유연하게 변화를 받아들여봐야겠다. 그래도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작가와 같이 평생 한타와 만차의 삶을 오가며 고민하며 살 것이다. 모두가 평생을 고민하고 질문하는 내용이 멋진 작가를 만나면 고전이 되나 보다.
15쪽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30쪽
명예를 지키지 못하고 치욕을 견뎌야 하리라고 예견된 삶이었다.
38쪽
너무 시끄러운 내 고독 탓에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
65쪽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 새 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70쪽
“또 다른 기회를, 다른 데서.” 그는 몸을 숙여 인사한 뒤 뒷걸음치며 돌아서서 불행의 본거지를 막 벗어난 사람처럼 사라져 갔다.
독서 순간의 기록
처음에 이사하는 주와 겹쳐서 오디오북으로 대충 흘려듣고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흘려들을 책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재독했다.
오디오북으로 정독할 수 없음을 뼈아픈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

재독하며 정독하는 멋진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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